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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은 녀석이 이렇게 비싸?
편집부에 잠시 들렀다가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키소 어쿠스틱이라는 생소한 일본 메이커가 만든 HB-X1이라는 작은 스피커다. 실물을 본 것은 물론 처음. 오래 전에 해외 오디오 잡지에서 전작 HB-1의 기사를 잠깐 읽은 적이 있었는데, 북셀프 타입의 스피커로서 가격이 너무나도 비싸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참 대단해, 도대체 무슨 비밀이 숨어 있기에 이렇게 비쌀까’ 하는 생각을 했고, 당시 내가 내렸던 결론은 어떤 놀랄 만한 신기술이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어떤 실적도 없는 신생 메이커의 제품이라면, 그 제품의 미래는 더욱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키소 어쿠스틱이 다른 제품 없이 이 작은 스피커만으로 10년 가까이 사세를 꾸준히 확장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내 예상은 가볍게 빗나간 것 같다.
놀라운 점은 키소 어쿠스틱의 HB-X1이 내 눈 앞에 보였다는 사실이다. 나로 말하자면, 지난 번 카리스마의 리뷰에 썼던 것처럼 개성을 가진 오디오라면 모두 다 좋다는 입장이지만, 합리적인 관점에서 제품을 판단해야 하는 수입원의 입장은 당연히 그럴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시장이 작고 열악한 국내 수입원의 입장에서 키소 어쿠스틱의 스피커를 수입한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 생긴 어느 용감한 수입원에서 어쩌면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는 모험을 감행했다. 짐작컨대 그 수입원을 주재하는 분은 열렬한 오디오 애호가일 것이며 해외에서 분명히 이 작은 녀석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먼저 반한 후, 수입을 결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국내 시장에서 판매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자신이 쓰겠다는 ‘비사업적인’ 마인드가 짙게 깔려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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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로 녀석을 보니 작아도 너무 작다. 사진을 보며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 HB-X1의 미드우퍼는 불과 10cm. 작기로 유명한 LS 3/5A의 11cm 미드 우퍼보다도 작은 유닛이다. 특히 유닛 양 옆에 여유를 두지 않아 폭이 매우 좁아서 더욱 작게 보인다. 대신 인클로저의 깊이는 제법 깊고 곡면으로 만들어졌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깊어져서 안정감이 있고 만듦새나 마감 또한 상당히 고급스럽다. 예상보다도 이렇게나 작다니 더욱 소리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거 한 번 들어보고 싶은데...” 결국은 자리에 눌러 앉고 말았다.
그렇게 들어본 소리는... 독자들에게 식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충격’이라는 말밖에 다른 표현을 하기 어렵다. 아마 예전에 이런 ‘충격’을 예상했더라면, 지금까지 썼던 리뷰에서 ‘충격’이라는 표현은 절반 이상 삭제되었을 것이다. 우선 음악이 나오면 HB-X1이 사라진다. 이 역시 흔히 쓰는 표현으로, 스피커 유닛에서 나온 음이 제대로 시원하게 펼쳐지지 않으면 음이 스피커에 ‘달라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고(즉 스피커의 존재가 의식되고), 음장이 한 장의 그림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유닛들의 편차가 크거나 네트워크가 정밀하지 않으면, 그리고 유닛 배플 면에서 잡스런 반사나 회절이 있으면 음장은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하이엔드 스피커를 들으면서 스피커가 사라진다는 표현을 자주 했지만, 그 표현은 양 스피커의 중앙에 맺힌 음상이 자연스러워서 소리가 좌우 스피커의 유닛에서 나온다는 느낌이 의식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HB-X1은 스피커가 ‘그냥’ 그리고 ‘완전히’ 사라진다. 양 스피커의 ‘사이’조차 의식되지 않고 스피커가 있는 자리, 아니 그 바깥까지 음장이 넓게 펼쳐진다. 스피커의 유닛이 있는 곳에서도 음악이 들리는데, 그 음은 그 유닛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어디선가 펼쳐놓은 것으로 들린다. 이 음장은 내가 꿈에 그리던 완전한 한 장의 ‘그림’으로, 스피커의 모든 구성 요소 - 유닛과 네트워크, 인클로저까지 철저하게 단 하나의 ‘시스템’으로 녹아들어야만 가능한 최고의 경지다.

어쿠스틱 호텔 캘리포니아. 마냥 넋을 잃고 있기가 민망해서 저역이 듬뿍 든 소스를 골랐다. 이런... 소형이라는 느낌은 있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한 저역이다. 게다가 라이브 녹음의 환상적인 음장이 더 돋보인다. 우리가 자주 체크하는 박수 소리는 메마르지 않고, 손바닥에 적당히 살이 붙은 포동포동한 박수 소리로서 고역이 지독하게 섬세하다. 섬세하면서 특별히 강조된 대역이 없기 때문에 음색은 순하고 다소 연하게 들리며 열기보다는 약간 서늘한 느낌. 록 콘서트의 강렬한 디스토션보다는 어쿠스틱 악기의 정갈한 녹음에 특별한 매력을 발산한다. 소리를 계속 듣다보니 점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는데, 이 정도 제품이라면 이 가격이 맞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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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X1을 들은 후로 한동안 내 오디오로 비슷한 소리를 내보려고 애썼지만 역시 여의치가 않았다. 어떻게 신생 메이커에서 더구나 그런 크기로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마침 본지에는 박진형님이 HB-X1의 하드웨어에 대해 공들여 쓴 상세한 리포트가 실려 있다. 포스텍스 혼 트위터, 피어리스의 미드우퍼, 몬도르프의 각종 고급 부품들이야 하이엔드 기기에서는 별로 새삼스럽지 않지만, 이 스피커는 놀랍게도 키소 어쿠스틱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타 제조사 타카미네와 협력해서 만든 것이었다. HB-X1 뒷면의 아름다운 곡선은 바로 기타의 캐비닛에서 따온 ‘필수적인’ 형상이었던 것이다. 기타의 캐비닛은 얇고 가볍다. 그리고 기타 줄의 진동에 공명해서 스스로 아름다운 울림을 보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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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발상의 전환이다. 스피커의 인클로저는 그 울림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요즘 하이엔드 스피커의 대세로서 유닛만이 울리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지며 두껍고 무겁고 내부에는 댐핑이 잔뜩 되어 있다. 재료로 단단한 목재 외에 석재나 금속을 쓰기도 한다. 나머지 부류는 하베스나 스펜더와 같은 전통적인 영국의 스피커들로, 유닛과 함께 인클로저를 적당히 울리도록 만든다. HB-X1은 후자의 방식으로서 기존 ‘깍두기’ 모양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기타처럼 내부에 흡음재나 댐핑재를 전혀 쓰지 않고 네트워크 부품들도 인클로저의 아래에 격리시켜 놓았다. 그리고 악기처럼 텅 빈 인클로저의 울림을 제대로 조율해낸 ‘악기형’ 스피커인 것이다. 기타가 사방으로 소리를 내는 것처럼 HB-X1의 매혹적인 음장의 비결은 특히 아름답게 울리는 인클로저에 있었던 것이다. 작은 유닛과 좁은 폭, 그리고 넓은 옆면은 그 울림이 회절이나 반사 없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기 위한 최적의 형상이었고, HB-X1을 들을 때 스피커의 바깥까지 음장이 펼쳐지는 것은 결코 환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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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악기형’ 스피커라고 하면 독자들도 언뜻 머릿속에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감탄할 만큼 좋게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악기 메이커가 직접 만든 독특한 스피커는 너무나 형편없어서 리뷰조차 거절한 기억도 있는데(그 악기 브랜드는 스피커 부분을 금세 정리했다), 단지 악기의 발성 구조를 흉내 내거나, 제조 공법을 비슷하게 한다고 해서 좋은 스피커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악기가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개개의 구성 부품들이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으로 통합된 것과 같이, 스피커 역시 인클로저는 물론 유닛과 네트워크 부품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야만 최고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HB-X1은 지금 유일하게 ‘악기형’ 스피커라고 불릴 수 있는 제품이며, 악기의 방식으로 울림의 조율에 성공한 독특한 작품으로 오래도록 스피커의 역사에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Kiso Acoustic HB-X1 Specif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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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
2-way ported loudspeaker |
우퍼 |
10cm |
트위터 |
1.7cm ebony horn |
주파수 대역 |
40Hz-30kHz |
크로스오버 |
5,000 Hz |
임피던스 |
8 Ω |
음압 |
85 dB |
크기(HWD) |
31.3×14.8×22.4mm |
무게 |
5.2kg |
가격 |
1800만원 |
수입원 |
탑오디오 |
수입원 연락처 |
070 7767 7021 |
수입원 홈페이지 |
http://www.topaudi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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