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인터커넥터와 스피커 케이블이 더 이상 화제조차 되지 못하고, 최근에는 그와 비슷한 가격대의 전원 케이블을 비롯하여 다양한 전원 관련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하이엔드 오디오가 누리는 호사도 이제 거의 종점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그럴까? 이번에 상투스 하이엔드 멀티 탭을 시청하면서 아니 사용하면서 필자는 합리적 사고와 감정 반응이 반드시 보조를 함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최근 하이엔드 오디오 액세서리에서 전원 관련 분야가 신데렐라로 떠오르고 있다면, 상투스처럼 하이엔드를 지향하는 멀티탭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막상 필자의 사무실에 배달된 상투스 하이엔드 멀티탭과 함께 상투스 전원 케이블 3종의 전모를 확인하면서 필자는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당초 하이파이클럽의 원고 청탁에 대하여 ‘이제는 멀티탭에 대한 시청 리포트까지 써야 하는구나!’ 하면서 무덤덤하게 생각했던 필자가 보기 좋게 한 방 얻어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멀티탭이든 전원 케이블이든 이들 제품은 한결 같이 상식을 뛰어넘는 규모와 내용을 보여 주고 있었다. 설계자에게는 결례가 될 수도 있지만, 이들 제품은 황당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어쩌다 이처럼 괴물 같은 물건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필자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특히 오디오 시스템 옆에 제자리를 찾아 주어야 할 것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거대하고 육중한 멀티탭은 그 자체로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상투스 멀티탭은 탁월한 투명도를 자랑하는 일본 스미모토 사의 크리스털 아크릴을 하우징에 채용하고 있으며, 상판 아크릴 밑에는 카본 필름을 깔아 놓아 세련미를 지향하고 그와 동시에 진동을 제어한다고 한다. 선재는 극저온 처리를 통하여 선재의 분자결정이 단단하고 분자배열 상태가 일정한 독일산 고순도 동선과 은 합금을 채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멀티탭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핵심인 단자에는 극저온 처리를 거친, 이탈리아 비트치노 사의 고급단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IEC 단자는 일본의 오야이데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1급 전기기능사가 8시간에 걸친 수작업으로 꼼꼼하고 정확하게 제작한 이 제품은 듀얼 전원 입력 구조로 각각의 파워 아웃렛의 전압이 일정하며, 아크릴로 된 외관은 외부 진동에 의한 공진과 노이즈 등을 제어해 준다고 한다.

 

 

 

상투스의 멀티탭은 어떤 음향을 이끌어 내는가?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연이어 일어난다. 멀티탭이 음향을 이끌어 낸다고? 멀티탭은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멀티탭의 기능은 전원의 안정성을 위한 단순한 액세서리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들 질문에 대하여 분명히 밝혀 둘 것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전원 접속 장치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오디오 시스템의 일부로 자리를 잡고 있다면 멀티탭 또한 자신의 고유한 음향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시청에서 필자는 상투스의 멀티탭이 이끌어 내는 음향을 확인하기 위하여, 필자의 레퍼런스 시스템인 익스포저의 2010S CD 플레이어 파이널의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인 뮤직-3 린의 사라 스피커 등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이번 시청에서 상투스의 멀티탭은 어떤 음향을 들려주었는가?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필자가 가장 먼저 시청한 음반은 크리스티안 치메르만과 사이먼 래틀이 협연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DG)이었다. 일반 제품과 비교해 보면, 상투스의 멀티탭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음악의 표정을 한결 명료하게 포착해내는 절제력과 분석력이었다. 특히 과부족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저음역의 분석력은 상투스의 멀티탭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한층 향상된 직선성과 한층 견고해진 음향 몸체 또한 상투스의 멀티탭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특성이었다. 상투스의 멀티탭은 베를린 필하모닉 현악 섹션 특유의 두터운 텍스추어는 다소 간소해지는 모습과 함께 선율선의 윤곽과 표정이 한층 또렷해지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고, 치메르만의 피아노 또한 윤곽이 한층 명료해지고 타건 또한 견고해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경향은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녹음에서도 큰 차이 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상투스의 멀티탭은 카라얀의 1970년대 녹음 특유의 유려한 발성과 풍성한 음향 조형에 일정한 수준의 절제력을 가미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면모는 저음역에서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저음역의 음향 윤곽이 한층 정묘해지고, 음향에 대한 분석력이 한층 향상되면서 음악 전체의 표정이 한결 투명해지고 명료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절제력과 분석력에 기반을 둔 이러한 음향 조형 능력은 전원의 극성을 정확하게 맞출 때 한층 더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극성을 정확하게 맞출 경우, 저음의 양과 표현 양상에서 큰 변화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음향 전체의 해상도가 한층 높아지고 배음과 여운이 한층 자연스럽게 정돈되는 모습을 보여 주며, 색채 표현 또한 한결 섬세해지고 선율선의 표정과 흐름 또한 한층 또렷해지고 미려해지는 모습을 이번 시청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면모는 게르하르트 오피츠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2번(핸슬러), 라두 루푸가 피아노 독주를 맡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1번(데카) 등의 녹음을 재생하면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오피츠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서는 투명한 공간감을 이끌어 내는 깔끔한 배음 구현, 타건의 변화를 미묘하게 반영하는 색채와 다이내믹 등을 확인할 수 있었고, 치메르만이 연주하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에서는 명료한 표정을 이끌어 내는 중음역을 중심으로 하여 상하로 펼쳐지는 섬세한 음향 조형에 주목할 만했다.

지금까지 필자는 최근 상투스에서 내 놓은 멀티탭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시청 소감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상투스의 멀티탭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허술한 일반 멀티탭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애호가들에게는 고맙기 그지없는 선물이라는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여, 하이엔드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보면, 상투스의 멀티탭은 단순한 전원 접속의 안정성만을 지향하는 제품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시청에서 필자는 이제는 멀티탭까지도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의 당당한 일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