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매트릭스사의 제품을 처음 접한 건 조그마한 입문기, 매트릭스 뉴미니아이프로라는 제품이었다. 조그마한 녀석이 제법 묵직하고 만듦새가 참 단단했었다. 그런 소형 DAC로는 드물게 인렛 전원이었고 다이나믹한 소리를 내주어서 한동안 애용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의 호감이 영향을 미쳤는지 최근 중고장터에서 X-SABRE를 별다른 고민없이 구매했다.
X-SABRE가 출시된 건 2014년이고 당시 매트릭스 사의 플래그십 DAC이다. 현재는 중고가가 많이 떨어져서 가성비가 참 좋다.


알루미늄 통절삭 가공으로 묵직하고 견고한 느낌을 준다. 손으로 들어보면 제법 무게감이 있다.
중국산이라고 무시할만한 만듦새가 아니다.



후면을 보면 접지가 가능한 3극 인렛전원단이고, 풀밸런스 아웃풋을 지원한다.



물량투입이 많다고 해서 꼭 좋은 건 아니지만 부실한 내부보다는 이렇게 꽉꽉 들어찬 제품에 호감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다 각설하고 청취소감으로  가본다. 어디까지나 간단 소감이니까...
X-SABRE를 처음 딱 물린 순간 "아 이런 게 DAC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중국산이라도 플래그십은 플래그십인 모양이다. 매트릭스 뉴미니아이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를 들려주었다.

배경이 정숙하고 소리의 무게중심이 촥 내려앉는게 굉장히 안정된 느낌을 준다.
단순히 웜(warm)계열이냐? 쿨(cool)계열이냐?를 놓고 본다면 웜 계열에 가깝다. 전 대역에 고소한 참기름을 적절히 발라놓은 것처럼 윤기가 좌르르 흐른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대역을 부풀리거나 어설픈 착색을 끼워넣지도 않았다. 밸런스가 좋고 다이나믹레인지도 넓다. 100만원 미만 DAC들보다 저역이 깊게 떨어지고 중고역에서도 소스의 신호를 상당히 섬세하게 분리해낸다.
이 정도면 요즘 200만원 정도에 팔리는 제품들하고 비교해도 딱히 뭐가 부족한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밀도감이다. 전원부에 신경을 많이 썼는지 꽉찬 소리가 난다. "Big full sound"이다.
"DAC에서 무슨 밀도감을 따지는가? 그런 건 다 앰프에서 해주는 일이다" 라고 반박한다면 딱히 틀렸다고 얘기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DAC에서도 충분히 유의미한 파워감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는 유명 브랜드 포터블 DAC 중에 USB로 전원을 받는 제품이 있다. 그 녀석도 튜닝을 잘해서 제법 질감이 좋다고 하는데 X-SABRE와 직접 비교를 하는 순간 그 존재감을 상실해버렸다. 그전까지는 잘 들었었는데 왠지 가볍게 날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안이 비어있는데 겉을 달콤하게 포장한 솜사탕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처분했다. 오디오와 관계된 모든 컴포넌트는 전원부가 생명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시 X-SABRE 이야기를 하자면 무대도 넓게 펼쳐지는 편이고 공간감이 참 좋다. 누군가 외치는 "공기반, 소리반"이 실현되는 느낌이다. 소스를 냉철하게 분석적으로 뱉어버리는 게 아니라 기분좋은 여운을 머금고 재생되는데 그 느낌이 마치 예전 디아블로2 게임의 팔라딘처럼 주변에 오오라가 감싸고 있는 것 같다. 고급스럽고 음악적이다.

사실 X-SABRE가 요즘 트렌드에 부합되는 성향은 아니다. 짜릿하고 칼같은 해상력을 뽐내는 기기들 사이에 있으면 왠지 우직하고 답답해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가만 찬찬히 들어보면 기본기가 충실하고 어떤 시스템에 매칭하든지 조화롭게 잘 어울릴만한 성격좋은 친구이다.

8점을 줄까 하다가 응원하는 의미에서 9점을 주었다. 이런 웜계열 제품에 대한 수요는 적지만 항상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