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소너스 파베르

과르네리, 아마티, 스트라디바리 등 장구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시간을 비껴간 듯 뛰어난 울림을 간직한 명품 악기를 만들던 장인들이 있었다. 그 악기로 아티스트가 음악을 연주하듯 오디오는 그 레코딩을 다시 연주한다. 엔지니어와 프로듀서 그리고 때로는 톤 마이스터가 포스트 프로덕션에 관여하며 종종 실연보다 더 뛰어난 재생음을 만든다. 오디오가 즐거운 것은 그런 재생음의 표현에 있어 오히려 현장보다 더 미세한 신호와 정돈된 무대를 만들어 각 개인의 집 안에서 즐길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 오디오 분야에서 악기와 같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스피커 메이커가 있다. 여러 목제를 쪽매붙임 방식으로 만들어낸 캐비닛은 마치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를 만들었던 장인들의 솜씨를 연상시킨다. 이탈리아에 위치한 소너스 파베르는 각 스피커에 클래식 악기를 만들었던 장인들의 이름을 붙였고 디자인과 제작 방식에 있어 그 악기의 영감을 불어넣었다.

소너스 파베르가 단지 악기의 제조공법과 장인의 이름을 빌려 그저 보기 좋은 스피커를 만들려 했다면 아마도 지금은 그 흔적조차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라틴어로 ‘소리의 공방’이라는 의미처럼 소너스 파베르는 스피커계의 과르네리였고 아마티였으며 스트라디바리였다. 오랜 시절 갈라지고 변형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고이 간직했다. 뿐만 아니라 그 소리는 마치 고악기처럼 풍부하고 고혹적인 울림을 가졌다. 쪽매붙임 원목과 잘 설계된 내부 브레이싱 구조는 공진을 줄여주었고 우아한 곡선과 마감을 가진 캐비닛에선 마치 백 만불짜리 악기 못지않은 음악성이 피어났다.

소너스 파베르의 진화

세월이 흘러 소너스 파베르의 타임라인은 2016년까지 이어진다. 그 타임라인 중간에 소너스 파베르의 창립자이자 독보적인 스피커 디자이너 프랑코 세블린은 운명을 달리했다. 소너스 파베르 시절을 뒤로하고 떠나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설립한 스피커 메이커는 Ktema(크테마) 라는 절대절명의 작품을 남겼으나 그의 죽음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반면 소너스 파베르는 그 사이 주인이 바뀌었고 라인업의 변경이 있었으며 기존 모델의 리바이벌과 신형 모델이 줄곧 출시했다. 아이다, 릴리움, 일 크레모네세, 아마티 후투라, 올림피카 등 신세대 모델이 추가되었고 과르네리, 스트라디바리, 엘립사 등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또 하나 새로운 점은 엔트리급 라인업의 확장이다. 류토를 비롯 토이 시리즈 등으로 소너스 파베르는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 수개월을 기다려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명품과 같은 스피커를 받아들고 기뻐하던 시절은 지났다. 소너스 파베르는 더욱 다양한 라인업에 초창기 그들의 소신과 철학을 대중적으로 담아내야만 하는 현실과 마주했다.

카멜레온 B

이번 리뷰의 주인공 카멜레온도 이처럼 시대에 적응하고 변화한 소너스 파베르의 단면이다. 언뜻 생각하면 과거 프랑코 세블린 시절 수공 명품 스피커로 한정되었던 당시 소너스 파베르의 분위기만 낸 대량생산 제품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카멜레온 B의 면면을 보면 이전의 그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충분히 들을만한 소리와 미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와 센터 스피커 그리고 북셀프 스피커로 이루어진 카멜레온 시리즈 중 북셀프 모델이 카멜레온 B다. 작은 소형 스피커지만 첫 눈에 소너스 파베르 스타일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사실 소너스 파베르가 과거 만들어낸 과르네리 오마쥬는 북셀프 디자인에 있어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다. 가죽 배플과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캐비닛에 더해 후면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우아한 디자인은 여러 아류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일렉타 아마토르가 있었다.

카멜레온 같은 경우 처음 보았을 때 캐비닛의 모양은 과르네리 오마주가 아닌 일렉타 아마토르나 익스트리마의 형상을 축소시킨 듯하다. 2웨이 구성에 전면 배플이 살짝 비스듬하며 스피커 하단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디자인으로 어셔 스피커가 유사하게 따라한 적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옆면이다. 구형이나 신형 레퍼런스급 모델과 달리 엔트리급 카멜레온은 보편적인 MDF를 사용하며 옆면을 분리할 수 있게 설계했다. 주변 인테리어를 고려해 사용자가 그에 맞게 선택, 교체 가능하게끔 하기 위한 실용적 아이디어다. 그 외 상단과 전면 패널은 소너스 파베르의 전통을 살려 가죽으로 마감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볼 때 카멜레온 B는 보편적인 2웨이 2스피커 형식으로 설계되었으며 포트를 마련해 전면 반사형 타입으로 만들어졌다. 주파수 범위는 저역한계가 50Hz, 고역은 25kHz 까지로 사이즈와 설계에서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공칭 임피던스는 4옴 설계로 능률은 2.831V/1M 기준 87dB 이다. 최근 고성능 북셀프의 보편적인 표준에 근접한다.

유닛을 살펴보면 고역과 미드/베이스의 프레임이 중첩될 정도로 매우 가깝게 붙여놓았다. 모든 유닛은 모두 특주 제품들로 주문 제작한 것들이다. 우선 고역을 담당하는 트위터는 29mm 구경의 패브릭 돔 타입이다. 미드/베이스 유닛은 150mm 구경으로 폴리프로릴렌 진동판을 사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카멜레온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매우 컴팩트하며 동시에 소너스 파베르의 기존 디자인을 멋지게 응용한 모습이다. 가죽을 덧입힌 것이 전통의 계승이라면 사이드 패널 교체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보인다. 키는 30cm를 가까스로 넘는 앙증맞은 크기에 무게 또한 6.7kg 으로 그리 무겁지 않아 두 팔로 들면 품안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모습이다. 사실 이런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은 단지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아니다.

옆에서 볼 때 마름모 꼴 캐비닛 디자인은 스탠딩 웨이브를 최소화하기 위한 소너스 파베르의 오랜 디자인 스타일이다. 한편 쉽게 저역을 내기 위해 저음 반사형 타입으로 설계했고 포트 자체를 스피커 바닥에 U 자 모양으로 마련했다. 소너스 파베르는 저역 롤오프를 최소화하기 위한 설계라고 얘기하고 있다. 다만 이럴 경우 저역의 질과 확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전용 스탠드 또는 상판에 구멍을 뚫은 특주 스탠드를 사용해야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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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업 & 리스닝 테스트

• 카멜레온은 북셀프 특유의 포커싱 능력이 가자 먼저 귀에 들어온다. 재즈 보컬 웅산의 ‘꽃잎’을 들어보면 무대 정 가운데 포커싱이 정확히 맺힌다. 과거 소너스 파베르와는 일단 분위기부터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한편 딱딱하게 경직된 느낌이 없이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사운드 표면과 자연스러운 밸런스를 보여준다. 과거 고혹적인 음색 중심의 소너스 파베르를 상상하면 오산이다. 매우 현대화된 음색, 음장 특성이 돋보이며 고혹적인 착색은 배제되고 대신 쿨&클리어 사운드가 지배적이다. 현대화된 소너스 파베르의 단면의 일부다.
• 미셸 카밀로와 토마티토의 피아노, 기타 협연 중 ‘Spain’에서 기타 사운드는 촉촉하고 반짝이는 빛깔을 머금고 있다. 현대적으로 진화한 소너스 파베르지만 딱딱하고 건조한 소리는 절대 아니다. 중역대역이 약간은 산만한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부드럽고 유연한 소리다. JBL 같은 스케일 위주의 미국 스피커보다는 브리티시 계열 스피커에 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토널 밸런스는 마치 B&W 와 유사해 토널 밸런스 면에서는 저역 하강이 아쉬운 정도 외에는 흠 잡을 곳이 없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피아노, 탄력적으로 넘실대는 기타는 예쁘고 곱게 롤오프 곡선을 그리고 찰랑인다.
• 크리스티앙 피에르 라 마르카의 [Cantus]같은 현악 레코딩에서 프랑코 세블린이 이끌던 당시의 소너스 파베르를 상상해본다. 좀 더 진중했고 무게와 기품이 서려 있었다. 악기를 켜듯 음악은 비장하게 날아와 귀가 아닌 가슴을 어루만졌고 때론 환하게 웃음 짓게 했다. 세월이 지나며 소너스 파베르의 특징도 바뀌었다. 해상도가 올라갔고 전에 볼 수 없었던 음장감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틈틈이 들리는 첼로의 작은 기척 등 해상도의 향상은 놀라울 뿐이다.
• 캐비닛 사이즈와 대역폭의 한계는 명확하다. 중간 저역, 대략 60Hz 이하 대역은 빠르게 롤오프시켜 말끔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이다. 데이빗 베누아와 제인 몬하잇의 ‘Barcelona nights’를 들어보면 아주 낮은 대역까지 풀 바디로 재생되는 느낌보다는 아주 컴팩트하고 깔끔한 중, 저역 특성들이 포착된다. 때문에 저역에서 불필요한 부밍도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따라서 대출력으로 드라이빙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옆이나 뒷벽의 거리를 1미터 이내로 좁히더라도 불편한 저역을 내주진 않는다. 억지로 저역을 끌어내리기보다는 매력적인 중/고역에 얼마나 풍부한 음색적 질감과 앰피언스를 불어넣느냐가 관건이다.

※ 위의 유튜브 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총평

과르네리, 아마티, 스트라디바리 등 악기 제작의 명장들이 최고급 악기를 만드는 데 있어 기본적인 덕목은 ‘기다림’이다. 그러나 더 이상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기다림은 쉽지 않다. 카멜레온은 이런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바로 구입해 소너스 파베르로의 첫 걸음을 떼는 데 매우 적합하다. 만일 카멜레온에서 조금이라도 소너스 파베르의 매력을 감지했다면 계속해서 과르네리와 아마티와 스트라디바리 등 전설적인 모델들이 떠올라 당신을 잠 못들게 괴롭힐지도 모른다. 카멜레온 B 는 명장 소너스 파베르, 희대의 하이엔드 스피커에 대한 로망의 단초에 불과하다.

TECHNICAL SPECIFICATION

LOUDSPEAKER SYSTEM	2 way bookshelf vented box
TWEETER	29 mm high definition precoated fabric dome driver with no ferrofluid. Sonus faber design.
MIDWOOFER	1x150 mm. Free compression basket design and PP cone. Ultra dynamic performance and linearity. Sonus faber design.
CROSSOVER POINT	2.500 Hz
FREQUENCY RESPONSE	50 Hz – 25.000 Hz
SENSITIVITY (2.831V/1M)	87 dB SP
NOMINAL IMPEDANCE	4 Ohm
SUGGESTED AMPLIFIER POWER OUTPUT	30W – 150W without clipping
LONG-TERM MAX INPUT VOLTAGE (IEC-268-5)	20V rm
DIMENSION (HXWXD)	315,5 x 185 x 283 mm
OPTIONAL DEDICATED STAND (HxWxD)	725 x 306 x 370 mm
TOTAL DIMENSION	1040,5 x 306 x 370 mm
WEIGHT (KG/EACH)	6,7
가격	120만원
제품문의	로이코 (02.334.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