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노이는 하나의 로망이었다. 삼십 여 년 전 내가 AR 소형스피커를 처음 사서 오디오란 것에 빠져들게 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그보다 더 수십 년 전의 선배 오디오 매니아들도 그러하였다. 탄노이란 스피커 정말 우리네 감성에 딱 맞는 스피커이다. 동양적인 생김새가 대청마루 창호에도 잘 어울리고, 은은한 통울림이 마루바닥으로 전해질 때 그 느낌이 온몸으로 타고 내린다. 부드러운 현악의 울림이 귀로 들어와 몸으로 전해질 때 이보다 더 그윽하게 가슴을 울려주는 스피커는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제 세상이 많이 변하였지만 그래서 이전의 확고부동한 절대적 위치는 아니지만 그리고 이전처럼 너무 비싸서 그냥 구경만 해야 되는 스피커도 아닌데 나는 아직도 탄노이를 마주보게 되면 묘한 감상이 빠져든다.

 고급스런 나뭇결, 최고급의 호두나무의 그윽한 색감이, 자칫 이 스피커 옆에 어설픈 가구를 놓았다간 바로 비교가 될 것 같다. 금장의 로고나 전면에 음각된 로고 역시 고급스럽기 그지 없다. 그냥 고급 가구, 수입가구의 장식장이라 하여, 이 가격을 붙여 놓아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만듦새는 여전히 정성스럽다. 나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마치 가구회사에서 하듯, 고급 왁스를 탄노이에서 별매하고 있으니 그 정성과 자부심을 알 수 있다.

 150조의 한정 생산품인 이 제품은 턴베리 GR 로 업그레이드 된지 얼마 안되어 상위버전에 사용되는 유닛 제조기법이 적용되어 제작된 LE - 리미티드 에디션 버전이다. 이전 SE 에도 85주년 기념으로 나와 기존 사용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는데 이번에도 또 다시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가격에는 만만치 않은 차이가 있지만, 그만큼 질적 차이도 존재한다.

▲  탄노이(Tannoy) Turnberry Gold Reference Limited Edition

 외관은 같아 보이지만, 뚜껑을 열면 엔진이라 할 수 있는 유닛이 다르다. 우선 눈에 확 띄는 트위터 GR 버전이 TW 방식의 적층혼이 적용된 것과 다르게 리미티드 에디션은 고급기와 같이 매끈한 일자 혼에 금도금 표면처리를 하였고, 알루미늄 마그네슘 합금 돔은 33mm 에서 55mm 로 구경도 처졌다. 크로스 오버 주파수도 1.3 kHz에서 1.1 kHz 로 낮아지면서 트위터 혼이 담당하는 가청 영역은 넓어졌다. 물론 재생범위가 44kHz 에서 27 kHz 로 낮아졌지만 별 의미는 없어 보인다. 들을 수 없는 소리대역이 아닌, 들려주는 소리의 차이가 더 크기 때문이다.

▲ 동축형 풀레인지 우퍼가 그윽하고 진한 사운드를 선사한다.


 

 알코맥스 3이라는 일반 알리코보다 3배 강한 자력의 우퍼가 만드는 저음은 이전 34Hz를 뛰어넘는 29Hz까지 가능하여졌고 입력의 범위 역시 400w max 에서 500w로 강력해 졌다. 반응이나 펀치력도 더욱 나아졌다. 한정 생산이라는 이름 하에 금딱지 하나 붙이고 가격을 올려 받는 것이 아니라 같은 10인치의 유닛이지만 전혀 다른 것이 안에 들어 있다.

 시청은 풀레인지 전용공간, 생각보다 넓고 튜닝이 잘되어 있어 부밍이나 특이성향 없이 스피커의 능력을 잘 끄집어 내주었다. 사용된 앰프는 패스의 신형 인티앰프, 탄노이 하면 관념적으로 진공관이 떠오르지만 적당한 것이 없고 요새야 뭐 둘간의 차이도 크지 않고 탄노이 스피커 역시 TR이라고 뭐 잘 안 맞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패스의 특성으로 볼 때 둘간 조화에는 문제가 없고 그리고 패스 특유의 공간감이 탄노이에서 살아나주면서 이 스피커로는 이례적이게 매우 잘 펼쳐진 무대를 만들어 내 주었다.

 우선 모차르트의 미사를 들어 보자. 레바인의 베를린 필이 만드는 비단 같은 튜티 위에 실비아 맥네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매우 고급지게 울린다. 목소리가 매우 윤택하고 걱정이 없어 보인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지는 소리이다. 역시 탄노이 다운 소리,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렇게 탄노이는 이전세기의 치열한 경쟁과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우리에게 넉넉함을 들려주었고, 그때와 별반 다름 없는 지금 상황에서도 탄노이는 그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이전과 확실히 다른 것도 물론 있다. 발레리 게르기에프의 호두까기 인형(Philips)을 올려 놓으면 최신의 동급 스피커에 전혀 뒤지지 않는 빠른 스피드를 가진 탄노이를 들어 볼 수 있다. 물론 이전에 그 변화는 알고 있었지만 10인치 한정판 유닛이 만드는 스피드는 탄노이라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임팩트 있는 반응속도는 15인치의 상급기를 뛰어 넘는다. 내가 들어본 가장 빠른 탄노이의 반응이다. 물론 상급기의 커다란 통이 만드는 그윽한 울림과 큰 구경이 만드는 스케일은 어쩔 수 없지만 일면 더 좋은 탄력적인 음을 내고 있음은 인정해야 된다. 사실 옛날에도 피아노나 재즈는 GRF메모리나 웨스터 민스터보다 스털링이 더 좋다는 평도 있었으니 새삼스런 발견도 아니다.

 게다가 매우 정확한 위상과 중첩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좋은 시청환경과 앰프와의 매칭인지는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이 역시 탄노이로 들어본 음상 중 가장 정밀한 것 같다. 한번 상상해 보자, 얼마나 아름다울지. 탄노이의 그윽한 음색이 빠른 반응과 정확한 음상의 하이엔드적 특성을 가지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내 앞에 현실로 나타난 것을.

 재미가 들려 이 음반 저 음반 올려 놓아 본다. 재즈 역시 매우 뛰어났다. 심벌의 상상 이상의 투명함과 피아노의 깊은 타건도 좋고, 콘트라베이스는 더 말한 필요도 없지만, 의외로 색소폰이나 트럼펫의 울림이 매우 진하게 나온다. 느릿한 재즈 발라드에서 울리는 테너 색소폰 음에 푹 빠져 몇 곡이고 이어 듣는다. 하지만 진짜 백미는 내가 항상 마지막에 틀어보는 국립 국악원의 관악 영산회상. 여기서 내가 말한 모든 장점이 터져 나온다. 복잡한 국악기의 중첩적 위상의 정위. 다이나믹한 타악부와 관악에 해당되는 취부의 그윽하면서 화려한 음색. 매번 리뷰 때마다 듣는 곡인데 정말 이 음반이야말로 이 턴베리 GR LE 가 가장 뛰어났다.

꿈의 스피커, 탄노이 턴베리 GR LE

 주력이 15인치이긴 하지만 꾸준하게 이어져온 탄노이의 10인치 동축 유닛. 전통적인 스터링과 중첩되는 면이 있어 처음에는 애매하긴 하였지만, 턴베리로 이어지면서 이 유닛의 장점이 더욱 살아나는 것 같다. 처음 본 인상 그대로 생긴 대로 소리를 내는 스피커이다. 듣지 않아도 이 스피커의 고급진 마감을 보고 월넛의 그윽한 색감으로 소리를 유추해 낼 수 있다. 처음에는 같은 모양에 너무 가격을 올린 것은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것은 확실히 아니다. 차로 말하자면 BMW의 M 버전, 벤츠의 AMG 같다고나 할까. 차체는 같지만 전혀 다른 엔진을 가지고 있고 드라이빙의 묘미는 세단과 레이싱카처럼 차이가 난다. 이전에 듣던 꿈의 스피커나 앰프 회사가 하나 둘 없어지고 이상하게 변질되어가는데 탄노이는 꾸준하게 오로지 이전의 표현대로라면 ‘동축형 풀레인지’ 만으로 줄기차게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좋아졌고, 그래서 고맙다.



Specifications

- 10-inch Dual Concentric-Teiber with alnico magnet
- larger 52-mm tweeter in aluminum-magnesium alloy
- Pepperpot Waveguide
- Special material for the cone
- Completely redesigned crossover with ICW ClarityCap MR capacitors, specially coated coils with low loss and high precision resistors
- Cover with the noble substance of Tannoy Kensington GR

- 권장 앰프 출력 : 20 - 250 W
- 연속 허용 입력(RMS) : 125W
- 최대 허용 입력(순간) : 500W
- 능률(2.83V / 1m) : 93dB
- 임피던스 : 8Ω
- 주파수 특성 : 29Hz - 27Hz
- 유닛 방사 각도 : 90˚ 원뿔
- 인클로져 유형 : 베이스 리플렉스(Distributed Port System)
- 내부용적 : 100ℓ
- 크기(W x H x D) : 456mm x 950mm x 366mm
- 무게 : 37.8kg
- 수입원 : 사운드솔루션 / http://www.sscom.com / 02-2168-4500
- 가격 : 14,800,000원